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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위를 보세요. 푸른 하늘이 당신을 맞이해줄 날이 있을 테니까. by nulon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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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08.04.07 목숨

목숨

제가 자주 가는 블로그중에 "규항.넷"이 있습니다.
기독인으로서 참 읽고 생각할 만한 글들이 많습니다.
생각만으로 그쳐서는 아니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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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 8:34 그러고서 예수께서는 당신 제자들과 군중을 가까이 부르시고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누가 내 뒤를 따르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합니다. 35 사실 제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요, 나 때문에 또한 복음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입니다. 36 온 세상을 벌어들인다 해도 제 목숨에 손해를 본다면 사람에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37 사실 사람이 제 목숨의 대가로 무엇을 내놓을 수 있겠습니까? 38 간음하고 죄짓는 이 세대 가운데서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럽게 여기면, 인자도 자기 아버지의 영광에 싸여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오게 될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길 것입니다."

앞에서 불같이 화를 낸 예수는 제자들에게 매우 강한 어조로 자신의 생각을 밝힌다. 물로 제자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생각이다. “자기를 버리고 제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 영광이 아니라 수난과 죽음의 길이라는 것이다. 목숨을 살리려 하면 읽고 목숨을 잃는 사람은 살 것이라 말한 예수는 바로 뒤이어 “목숨은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얼핏 앞뒤가 안 맞는 말처럼 보이지만 예수는 사람에겐 두 가지 목숨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예수는 우리가 집착하는 육체의 목숨은 진정한 목숨이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오히려 육체의 목숨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하느님의 나라를 만드는 일에 나설 때 진정한 목숨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한다.
몸은 살아있되 목숨은 죽은 사람도 있고 몸은 죽은 지 오래이나 목숨은 생생히 살아있는 사람도 있다. ‘한낮 세포 덩어리의 목숨을 선택할 것인가, 영원하고 진정한 목숨을 선택할 것인가?’ 2천년 전에 몸은 죽었지만 여전히 우리 곁에서 살아 숨쉬는 예수는 육체의 목숨에만 집착하는 우리에게 묻는다.

마가 12:18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들이 예수께 와서는 질문하여 이렇게 말했다. 19 "선생님, 모세가 기록하여 우리에게 남긴 바에 의하면, 어떤 사람의 형제가 죽고 부인만 남아서 자식을 두지 못한 경우, 그 동기는 그 부인을 맞아 자기 형제에게 후사를 세워 주도록 해야 합니다. 20 칠 형제가 있었는데, 첫째가 아내를 맞았다가 죽고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21 그래서 둘째가 그 여인을 맞았지만 또 후사를 남기지 못한 채 죽었고, 셋째도 그러하였습니다. 22 그렇게 일곱이 다 후사를 두지 못했습니다. 모두 죽고 마지막으로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23 그들이 [다시 살아나는] 부활 때 그 여인은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사실 일곱이 모두 그 여인을 아내로 삼았으니 말입니다." 24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여러분은 성경도 모르고 하느님의 능력도 모르기 때문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까? 25 사람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때에는 장가들지도 않고 시집가지도 않으며,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기 때문입니다. 26 그리고 죽은 이들에 관해서, 그들이 일으켜진다는 사실을 두고 모세의 책 가시덤불 대목에서, 하느님께서 모세에게 어떻게 말씀하셨는지 읽어 보지 못했습니까? '나는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이라 하셨습니다. 27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살아 있는 이들의 하느님이십니다. 여러분은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두가이들은 부활을 믿지 않았다. 그들은 모세오경만을 하느님의 말씀이라 생각했는데 거기엔 부활이라는 게 나오지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부활을 믿지 않는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이 지배자들이기 때문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부활이나 영생, 내세, 후천 세상 등은 피지배 계급의 가치관에 속한다. 현실적 기득권와 안락을 가진 사람들은 내세에 집착하거나 소망할 이유가 별로 없다. 고통스런 현실을 보내는 사람들은 도래할 세상이나 부활 이후의 삶에 관심을 갖게 된다. 그런 염원이 올바른 사회의식과 결합하면 미륵사상이나 동학처럼 매우 유장한 진보적 에너지로 나타난다. 그러나 그런 염원 이 지배체제에 포섭될 때 더 악랄한 억압과 착취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현실은 죄로 물든 무상한 것이며 진정한 삶은 내세에 있다는 주장은 서양 중세의 지배 체제가 인민을 억압하고 착취하는 가장 중요한 논거였다.
예수는 부활이 단지 세포의 재생, 즉 죽은 육체가 되살아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 만일 부활이 그러 것이라면 부활은 영생일 수 없다. 되살아난 세포는 다시 노화하고 결국 생명은 죽기 때문이다. 삼일 동안 죽었다가 부활했다면 그저 노화가 삼일 지연되었다는 것 외엔 아무런 의미가 없다. 예수는 부활하면 “하늘에 있는 천사들처럼 된다”고 한다. 천사는 세포 덩어리가 아니다. 그래서 천사는 수명이 없이 살아 소통한다. 사람이 부활한다는 건 세포덩어리인 몸을 떠나 영원히 살아 소통하는 것을 말한다. 그것이 예수가 말한 ‘진정한 목숨’이다.(8:34-38) 우리는 흔히 몸이 죽으면 목숨도 사라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몸이 죽음으로써 오히려 영원한 목숨이 시작되는 것이다. 몸의 목숨에 집착하면 진정한 목숨을 잃는다. 몸을 사용하는 목숨은 단지 목숨의 일부일 뿐이라는 걸 잊는 순간 우리는 영원히 목숨을 잃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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