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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힘들 때, 조금이라도 고개를 들고 위를 보세요. 푸른 하늘이 당신을 맞이해줄 날이 있을 테니까. by nulonge


한국교회에서 틀리다와 다르다를 이야기할 수 있을까?

'틀렸다'는 , 셈이나 사실 따위가 그릇되거나 어긋남을, '다르다'는 비교가 되는 두 대상이 서로 같지 않음을 뜻합니다.[각주:1] '틀렸다', 혹은 '옳다'고 판단하려면 명확한 기준이 있어야 하고, 기준에 따라 옳거나 그름을 판가름내기 마련이지요. 옳고 그름의 기준은 누구나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논쟁의 여지가 없어야 합니다.

'다르다'는 건, 다름을 알기까지 기준같은게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또 저렇구나 하는, 차이를 인식하는 것 뿐이지요. 다름을 알고나서, 그 다름의 옳고 그름을 따질 수도 있고, 그 다른점을 인정하고, 존중할 수도 있습니다. 즉, 다른 것을 인식하는 것이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에 선행합니다.

살다보면 명확한 기준이 없는 영역이 있을 수 있는 데, 이런 부분에서도 옳고 그름을 따지는 사람을 만나면 참 피곤합니다. 결혼한 두 사람이 남녀의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서, 서로 습관이 '달라서', 성격이 너무나 달라서 다투곤 합니다. 원인을 찾아보면 서로 다른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 기준으로 상대방을 판단하는데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지요. 사소한 것에도 자기 자신을 기준삼아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데, 하물며 정치적이거나, 경제적인, 윤리적이거나 종교적인 문제들은 말해서 무엇하겠습니까?

일치된 기준이 없이 소모적인 논쟁을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질 수 없을 때는, 먼저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와 다른 의견, 생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단계로는, 차이를 비교하고 합의를 보거나, 새로운 기준을 만드는 것이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불행한 일이지만, 예수쟁이 가운데엔 '다르다'와 '틀리다'를 구분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저 또한 예수쟁이지만, 다름을 인정하지 못하고 일관된 잣대로 '너는 틀렸다'는 생각으로 가르치려는 분들을 볼 때마다 마음이 불편합니다. 아마도, 기독교 교리가 갖는 절대적인 도그마[각주:2]때문이 아닐까합니다. 

언젠가 제가 예전에 다니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선교대회'라는 행사가 있었는데, 마침 초청한 선교사는 동티모르에서 재건사업을 도우시던 분이셨습니다. 말씀하시는 중에, 동티모르에서 벌어진 잔학상을 말씀하시고, 그들에게 필요한 건 예수뿐만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존과 재건에 필요한 구체적인 지원을 해주는 것이라고 하시면서, 이 일에 서로 다른 종교간 공동 협력이 필요하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다고 하셨지요. 청중 가운데 이 말씀에 동의할 수 없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결국, 모든 이야기가 끝나고, 문답시간이 오자, 두 사람 사이에 논쟁이 벌어졌습니다. 선교사님이 하신 말씀의 초점은 생명을 살리는 일이라면 종교라는 범위를 벗어나서 포괄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는 것이었지만, 반대편 입장은 다른 종교와 협력을 타협으로 받아들였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참으로 편협하지요. 다르다고 해서, 배격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해볼까요? '다르다'는 이유로 '틀렸다'라고 감히 판단하는 한국교회가 어떤 일을 했는지를. 1991년, 감리교신학대학교 변선환 학장이 출교당한 사건이 있었습니다. "교회 밖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한 것이 화근이었습니다.[각주:3] 다원주의를 인정하는 이 말에 보수 신학자들이 반발하면서, 감리교회 차원에서 변선환 선생님을 출교하고, 신학대학교에서 밀어내버렸습니다. 그 탓일까요? 이미 그전부터 그래왔지만, 한국교회 신학의 주류는 중세 교부 철학에 바탕을두고 성장한, 서양에서 맹목적으로 수용한 조직신학이요, 그 이회의 신학은 모두 "틀린 것"이 되어 버렸기 때문에 재야신학자(이런 말이 있는지 모르겠네요)들은 그저 입을 다물 수 밖에 없었습니다. 왜 "다른" 견해를 "틀린" 견해로 받아들이는 걸까요? 민중신학을, 한국 토착화를 주장하는 신학을, 열린 마음으로 다른 종교를 대하는 신학을, 다른 의견을 말하는 예수쟁이는 하나님 혹은 하느님이 사랑하지 않는 것일까요?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 예수의 가르침은 어찌 이리도 실천되지 않을까요? 저는 다양성을 인정하고 포용할 줄 모르는 보수 신학자들이 무섭습니다.

신학(神學) 그 자체가 성서를 바탕으로 전개되는, "하나님" 혹은 "하느님"과 관련된 일련의 학문 체계 아니던가요? 학문에 인간의 판단이 개입되어 있는데, 어떻게 하나의 신학만 올바르고 정확하며, 다른 신학은 틀리다고 할 수 있는 것인지 저로서는 이해할 수 없습니다. 신학이 올바르다면, 그에 따라 바른 실천을 옮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저 개인적으로는, 그리고 많은 분들이, 한국교회를 바라보며 썩었다고 합니다.[각주:4]

한국교회가 정체되고, 안팎으로 비판받고, 시련을 겪는 이유중 하나는, 사회 전체를 바라보지 못하고 개인의 신앙 차원과 교리 그 자체에만 집중하는 경직된 신학에 이유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신학이 올바르게 정립되려면, 개인의 신앙 차원이 아닌, 공동체 전체를 품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고등학교 교과서에 나왔던 인물중에 니부어(Karl Paul Reinhold Niebuhr)라는 분이 계시죠. 이분, 예수쟁이입니다. 그런데 이분이 뭐라고 했는지 아시나요? '사회 집단의 도덕과 사회적 행동은 개인의 도덕과 행동보다 현저하게 도덕성이 떨어지고 저하된다'고 했었지요. 개인적으로는 윤리적인 사람들이 모여서 집단을 이룬다 해도, 그 집단이 윤리적이라고 할 수는 없다는 의미 입니다. 이분의 제자중에 디트리히 본회퍼가 있습니다.

디트리히 본회퍼는 독일 교회가 히틀러를 지지할 때, 히틀러 암살계획에 참여했다가 발각되어 사형당한 신학자요, 목사입니다. 당시 대다수 독일 기독교인들이 양심적이지 않았을까요? 신앙이 바르지 못했을까요? 그런데 왜, 독일 교회는 공개적으로 히틀러를 지지했을까요? 이때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지 않은 사람이 디트리히 본회퍼입니다.[각주:5] 디트리히 본회퍼는 신앙과 양심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는 있지만, 그리스도인 전체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습니다. 그의 시선은 교회를 등진 가난한 노동자에게로 향합니다. 니부어는 자신이 아끼던 제자, 디트리히 본회퍼의 죽음을 예견했나 봅니다. 죽을지도 모르니 독일로 가지 말라고 만류했던 사람이 니부어였으니까요.

한국교회가 정말 빛과 소금으로 역할을 다하려면, 개인 차원에서 편협한 구원만을 이야기해서는 안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생을 주는 구원자 하나님의 아들 예수로 그 성격을 제한해버리고, 역사속의 예수를, 너무나 인간적인 예수를 바라보지 않는 것은, 예수를 다시 한번 십자가에 못박는 일입니다. 그 편협한 종교성만을 갖고, '너는 나와 다르기 때문에 너는 틀렸다'라고 주장할 수 있는 한국교회가, 그래서 자기가 지금 무슨 일을 하는 지 알지 못하는 한국교회가 저는 무섭습니다.

3.1 운동을 일으킨 민족 대표 33인중 16명은 기독교계 대표였습니다. 천도교와 불교를 합쳐서 17명입니다. 지금도 대한민국의 기독교인 수는 25%가 되지 않습니다. 3.1 운동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적었습니다. (가장 교세가 컸던 종교는, 동학의 흐름을 계승한 천도교였습니다.) 그럼에도, 민족 대표 33인중 약 절반은 기독교인이었습니다.[각주:6] 이들은 어떻게 종교가 다른데 손을 잡았을까요? 어떻게 종교인들이 나서서 3.1운동을 주도했을까요? 하나님이 품으라고 했던 마음이 그저 죽은 후에 가는 천국뿐이라 생각하지 않고, 이 민족의 독립, 사회정의를 이루는 것, 사람을 사랑하는 것에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이야기가 옆길로 새는 것같아서 다시 돌아오자면, 한국교회가 성장하고, 건강해지려면,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한국교회에 하나님을 가두기엔, 그분은 너무나 바람같고, 공기와 같은 분이고, 우주보다 큰 분이죠.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람만 생각하고 품어주시기에는 그분의 가슴은 너무나 넓습니다. 그리 편협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열린 마음을 갖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이십니다. 생명을 죽이는 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일입니다. 자연을 정복하며 오만방자한 인간을 하나님은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이 자연을 정복하라 하셨을 때는,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잘 관리하라는 뜻이었지, 자연을 아무렇게나 인간이 쓰고 싶은대로 쓰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기를 원하십니다. 천수답 마냥, 인간미는 없고 단지 하나님만을 향해 손벌리고 이웃과 주변을 바라보지 못하는 예수쟁이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한국교회가 다른 생각, 다른 의견들에 열린 귀를 가졌으면 합니다.



  1.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한 결과입니다. [본문으로]
  2. a principle or set of principles laid down by an authority as incontrovertibly true : the Christian dogma of the Trinity | the rejection of political dogma. [본문으로]
  3. 변선환 선생님에 대해서는 한겨레 신문 종교전문기자 조현씨께서 쓴 책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http://www.kyobobook.co.kr/product/detailViewKor.laf?ejkGb=KOR&mallGb=KOR&barcode=9788901090870&orderClick=LAG [본문으로]
  4. 그렇다고 한국교회를 내쳐야 할까요? 모든 교회가 그런 것은 아니기에 그래도 희망을 가져봅니다. 이 희망이 꺼지지 않기를 또한 바라고 바래봅니다. [본문으로]
  5. 디트리히 본 회퍼에 대해서는 다음을 참조하세요: http://seoulrain.net/960 [본문으로]
  6. 부끄러운 역사지만, 민족대표 33인중 대다수는 나중에 변절하여 친일 인사가 됩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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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2 Trackback 1
  1. Favicon of http://seoulrain.tistory.com BlogIcon 서울비 2009.04.05 18:4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트랙백 보고 넘어와 글 잘 읽고 갑니다.

  2. 이필경 2009.04.09 11:05 신고 address edit & delete reply

    다들 넘 똑똑해서 자기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거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무 많은 교파가 존재하고 있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역설적이기도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갈등하는 문제를 아주 잘 정리해 주셔서 고맙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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